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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68호 낙엽끼리 모여 산다 (2010년 10월 26일)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0-10-27 17:30
조회수: 3639
 
                     낙엽끼리 모여 산다

                                                                 조병화

                     낙엽에 누워 산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낙엽이 지는 하늘가
                     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
                     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

                     항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
                     살아서 가까이 가는 곳에 낙엽이 진다
                     아 나의 육체는 낙엽 속에 이미 버려지고
                     육체 가까이 또 하나 나는 슬픔을 마시고 산다

                     비 내리는 밤이면 낙엽을 밟고 간다
                     비 내리는 밤이면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

                     밤은 나의 소리에 차고
                     나는 나의 소리를 비비고 날을 샌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낙엽에 누워 산다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
                              

                                                        조병화,『하루만의 위안』


이 작품은 나의 시집 『하루만의 위안』의 중심이 되는 내용이라 하겠다.
나의 도서관 이층 방은 수목들에 둘러싸여 봄이면 꽃송이 바다에,
내가 둥둥 떠서 잠이 들고 잠이 깨고 하는 것 같고,
가을이면 무수한 낙엽의 바다 위에, 내가 뭉쳐 떠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어느 서리가 내리던 아침,
잠에서 깨어 이 무수한 낙엽들 속에서 낙엽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를 발견하고, 나 아닌 무수한 나를 발견하고,
내 이웃 내 이웃의 이웃들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 이미지가 이 시의 골격이었다.
우리들 모두 낙엽 같은 인생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낙엽이 지닌 소중한 생명과 그 존재 이유와 낙엽이 아니면
가지지 못하는 구수한 인간적인 사상. 이러한 실존적인 인간 가족,
인간 부락, 인간 세계-이러한 것을 생각했다.
낙엽이 청정 푸른 잎사귀가 될라 해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고,
낙엽이 낙엽이 아닌 다른 모습을 모방하고 발버둥쳐대야
이것도 우스운 일이고, 낙엽은 낙엽끼리 모여 낙엽답게 낙엽처럼 살 때
낙엽으로서의 강한 정과 생명을 지니게 된다는 생각이었다.
이 시로써 나는 나의 세계가 이웃으로 이웃에서 이웃으로
번져 나가야 하는 하나의 방향 선을 발견했다.
여기서 낙엽을 우리들의 여러 모의 모습으로 바꾸어 보면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소리 없는 우정을 독자는 느끼게 될 것이다.


                                                     조병화,『고백』, 오상, p.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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