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825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11-20 14:36
조회수: 80
 
87 머나먼 약속

오늘은 불기 2526년 음력 사월 초파일
양력 오월 초하루
부처님 오신 날
내장산 비내리는 새벽
우인雨人 송지영宋志英님과 호텔에서 우산을 빌어 쓰고 나선
내장사 들어가는 길
아직 중생들은 보이질 않는다

이곳에서 이렇게, 20년 전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신
어머님을 만나 뵐 줄이야
이것도 전생의 약속이겠지

송 선생님, 나는 요즘 ‘머나먼 약속’이라는
철학을 생각했습니다.
약속이라는 말이 좋을까요?
예약이라는 말이 좋을까요?
약속이라는 말이 좋겠는데
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이 모두 약속입니다



비를 걸어가는 두 우산

사방이 촉촉한 나무뿐이다
어머니, 저 여기 와 있습니다
그동안 먼, 긴, 그 윤회의 길 편안하셨습니까
얼굴을 좀 보여 주십시오
저의 눈이 흐려 갑니다

서래봉 봉우리 넘어오는
희끗희끗한 구름 열리는 하늘
오늘 어머님이 쉬어 가실 내장사는
아직 중생들이 보이질 않는다



비를 걷는 두 우산
아, 머나먼 약속
어머니, 저는 지금 이곳에 와 있습니다.

                              시집 『머나먼 약속(約束)』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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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 「머나먼 약속」은 제 26시집 『머나먼 약속(約束)』(1983.10.4. 현대문학사)에 들어 있는 작품입니다.
  나는 이 무렵 우리들 인생이라는 것은 모두 전생에서 약속되어 나온 약속으로 그 약속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운명이라든지, 숙명이라든지 하는 것이 다 이 전생의 약속이겠지요.
  이 세상에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그 시간의 진행에 따라서, 배정된 스케줄대로 그 인생은 운행이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시간의 순서대로 그 인생의 순서가 그 약속대로(예정대로) 진행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인간의 일생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이렇게 시를 쓰게 된 것도 전생의 약속이며, 1983년 10월 4일에 현대 문학사에서 시집이 나오게 된 것도(감태준 주간 청탁) 전생의 약속이며, 그 시집의 이름을 ‘머나먼 약속’이라 한 것도 그 약속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실로 머나먼 전생에서 약속이 되어 나온 나의 이 생애, 내가 이렇게 고독감으로 살아가면서, 그 고독감대로 시를 쓰면서 나를 살아오는 것도 나의 그 약속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도 그 약속이며, 그 사랑하는 사람하고 헤어지게 되는 것도 그 약속이며, 싫은 사람하고 살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그 약속인 것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그 약속을 충실히, 하나도 어기는 법이 없이 살아오고 있는 겁니다. 어려운 약속도 피하지 않고, 이렇게 나에게 정해진 약속을 하나 빠짐없이 살아오는 길, 참으로 어려운 것들이 많았고, 부끄러운 일들이 많았고, 반짝반짝하는 기쁨도 더러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견디기 어려운 일도, 부끄러운 일도 해야 하는 그 피할 수 없는 약속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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