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10호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0-08-07 08:04
조회수: 36
 
시간이여 안녕!

  요즘은 방학이다. 시간과 이탈되어 살아보는 계절이다. 더군다나 여름 방학보다 더 즐거운 동면(冬眠)의 방학이다.
  만판 자기 자신을 방기하여 살아 본다. ‘시간이여 안녕!’ 이러한 기분이다. 우리의 생존은 물론 시간의 함수이다.
  그러나 이 엄숙한 함수 속에서 방학이란 어느 정지된 생존의 휴지기가 선생이라는 사람들에겐 있는 것이다. 시간의 노예와 같은 도시의 생존 속에서 잠시 벗어나 국적이 없는 시민처럼 그렇게 살아보는 셈이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외출하고 싶을 때 외출하고,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고, 잠자고 싶을 때 잠자고, 세수하고 싶을 때 세수하고, 마침내 동물적 원시생활을 해보는 셈이다. 태만이라는 가책도 없다. 후회(後悔)라는 것도 없다. 경쟁이라는 것도 없다. 권태라는 것도 없다. 그냥 그대로 하루를 보내고 그냥 그대로 이틀을 보내고 그냥 그대로 사흘을 보내 보는 것이다. 시간에서 해방이 되고 규칙에서 벗어나고 일체의 구속에서 이탈되어 보는 희열(喜悅)을 만끽해 보는 것이다. 현대생활에서 시간이라는 것은 곧 생명이요, 생존을 말하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시간하고 유리된 생활 속에서 영원한 정지와 같은 생명과 생존을 감미해 보는 것이다.
  저녁이면 술을 마시러 명동으로 나간다. 시계를 보고 그 시간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태양의 고도와 온도의 차도와 명암의 이동에 따라 거리에 나서면 정확하게도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그 벗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 원시적인 감각에 하나의 쾌감까지 느껴보는 요즘의 생활이다. 시계 없이 살아보는 고마운 방학이라는 이름의 이 혜택, 어둑어둑한 ‘동방쌀롱’ 한구석에서 끼리끼리 빠져나와 명동 애수의 거리를 걷는다. 이집에서 한잔, 저집에서 한잔 두잔, 즐거운 벗들의 웃음과 뼈저린 생활과 문학과 철학과 예술과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 - 시에 밤은 가는 줄 모르게 깊어가는 것이다. 명동의 밤은 시간의 함수가 아니다. 그것은 돈과 기분의 함수다. ‘미각’, ‘향원’, ‘바다비아’, ‘카리레오’, ‘블랙•스톤’, ‘그린•포오트’ 이러한 주점 혹은 스텐드•바아는 우리들의 고가한 청춘과 우정을 지불하고 회상과 밤을 사는 곳이다.
  포켙들은 가벼워도 인색하지 않은 정신의 기사들은 보잘 것 없이 쇠퇴해 가는 육체라 할지라도 풍요한 영혼의 옥토를 지닌 정신의 지주들이다. 이렇게 해서 밤이 사라지면 날이 밝는다. 여덟시도 아침이요, 아홉시도 아침이요, 열시 열한시 열두시 새로 한시 두시도 나에겐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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