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641호 예순여덟번째 서신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9-02-12 13:21
조회수: 30
 

  올해도 입춘(立春)이 지나가고 우수(雨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당신도 잘 알고 있는 권옥연 화백이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휘호를 하나 보내 주시어 편운재 현관에 걸었습니다. 이러고 보니 실로 농경 시대의 평화로운 봄이 생각나곤 합니다.
  지금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며, 삶과 싸우는 것이며, 죽을 수 없어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제 나에게도 한계가 온 것 같습니다.
  어머님이 주신 체력이나, 어머님이 주신 재능이나, 어머님이 주신 꿈이나, 그 어머님하고의 약속이나, 하는 것을 다 이루고 난 뒤 나른한 상태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하기에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도 점점 사그라져 가며, 당신에게 대한 그리움만 남아서, 한없이 한없이 떨어져 가는 느낌으로, 세월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당신이 몹시도 그리웠습니다
     긴 인생을 살면서, 내내
     다 기다릴 수 없는 당신이 그리웠습니다

     아, 인생은 ‘기다림’이라고 했던가
     긴 긴 인생을 내내
     당신이 그리웠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내 나이 여든이 되려니, 어머님은 언제까지나 이 세상 이 자리에 나를 놓아두시고 계실는지, 그것이 매일매일 궁금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제법 봄 냄새가 나서, 기쁨보다는 선뜩 무서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많은 꽃 피는 계절을 어떻게 지낼까, 하고.
  그 많은 생명이 솟아나는 꽃 피는 계절, 그 엄청나게 아름다운 생명의 계절을, 나는 어떻게 견디나 하는 생각, 그것이 기쁨을 주기 보다는 무섭게 내 가슴을 흔들고 있던 겁니다.
  오, 생명․ ․ ․ ․ ․ ․.
  이런 편지로 혹시나 당신 기분을 어지럽게나 한 것이 아닌가, 하고 송구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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