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의 편운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612호 서른가섯번째 서신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8-07-26 10:06
조회수: 38
 
  아, 덥습니다. 이렇게 더워서야, 하면서 살려면 참아야지, 부처님이 도를 닦던 인도는 더욱 더웠겠지, 하는 푸념 아닌 푸념이 나오곤 하는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참는 자만이 살아남고, 살아남은 자들만이 살아가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지만, 이렇게 늙어서 이러한 더위를 살아간다는 것은 실로 고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고, 견디고, 일하고, 기다린다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는 말을 일전에 전해 드린 것 같습니다만, 참는 자만이 인생을 이기고, 견디는 자만이 인생을 이기고, 일하는 자만이 인생을 이기면서 살아가는 것이며, 인생은 끊임없는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도움을 기다린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인생 마지막의 고행(苦行)인가, 하는 생각으로 지금 나는 기진맥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견디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말은 하면 엄살을 떨고 있다 하시겠지만, 어린애 같은 이야길 하고 이다 하시겠지만, 아직 고생을 덜 해 보아서 그렇지 하시겠지만, 강하게 살아온 것 같아도 실은 나는 이렇게 무너지기 쉬운 이간입니다.
  신념이 약한 어린이올시다. 죽음을 연습하면서, 작별을 연습하면서, 그럴 듯하게 단념(斷念)과 인내(忍耐)를 살아오는 연습과 그 신념을 굳혀 왔습니다만, 아직 그 신념과 단련이 이렇게 약합니다.
  죽음, 그것이 나에게 어떻게 올까, 하는 생각으로 줄곧 그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아왔지만, 요즘 매일같이 죽음과 나머지 세월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치한 생각이라 생각하실지 모르나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생각으로 요즘을 견디고 있습니다.
  그럼 이 더위에. 몸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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