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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화의 삶과 시 -귀향의 시대- " 강연 (2019.12.13)
2019년 문학관 상주작가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제2차 "조병화의 삶과 시" 강연을 개최하였습니다.

1부 연구 주제 발표 “귀향의 시대”를중앙대학교 이승하 교수님이 강연하였습니다. 조병화 시인을 기억하는 많은 문인들이 참석하여 주었습니다.
조병화 시인의 말년의 시를  "귀향의 시대" 주제로한 강연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과 잘 어울려 감명깊있습니다.
2부 시 콘서트에서는 조병화 시인의 철학이 담긴 시를 기타와 대금 반주에 낭송하였습니다.  .

   조병화의 삶과 시
- 방황의 시대(1991~2003) -
시간: 2019년 12월 13일(금)오후 1시~4시
장소: 예술가의 집(대학로)
주최: 조병화문학관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학관협회
협력: 한국문인협회 종로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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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화 시인이 목 놓아 부른 황혼의 노래
―70세부터 더욱 왕성한 시세계를 보인 데 대하여

이승하(시인, 중앙대 교수)

  1. 실마리—과작과 다작
  
  조병화 시인 탄생 100주년이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1921년생이니 2021년이면 탄생 100주년이 된다. 82년 생애에 낸 시집의 총 권수가 53권이다. 따로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1949년에 첫 시집 󰡔버리고 싶은 遺産󰡕을 낸 것을 등단 시점으로 삼으면 54년여 작품 활동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정확히 1년에 1권씩 내면 53권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과작’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대체로 호의적이고 ‘다작’을 한 문인이라고 하면 약간의 비난을 담아 말하는 경향이 있다. 과작의 문인을 향해 ‘게으르다’고 하지 않고 ‘엄격하다’고 표현하며, 다작의 작가를 향해 ‘성실하다’고 하지 않고 ‘남발한다’고 흔히 말한다. 조병화 시인은 54년 문단 활동 기간 중 53권의 시집을 내면서 이런 말을 듣지 않았을까? 재직한 대학과 문단에서 수장을 오랫동안 한 그이 앞에서 대놓고 비난을 하지는 않았을지라도 문단의 쑥덕공론을 그가 몰랐을 턱이 없다. 하지만 조병화 시인은 생애 내내 줄기차게 썼고 꾸준히 시집을 펴냈다.
  한국 근ㆍ현대문학을 통틀어 조병화만큼 부지런한 시인은 없었다. 한국시인협회장과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장 등 문학단체의 대표도 몇 번 했었지만 경희대학교에서 문리대학장과 교육대학원장을 했고, 인하대학교에서는 문과대학장, 대학원장, 부총장을 역임했다. 해외여행도 수십 차례 했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개인전도 여러 번 열었다. 그 바쁜 와중에도 그는 늘 시를 쓰고 있었고 ‘시인’이라는 본연의 자세를 흐트러뜨린 적이 없었다. 이런 그에게 다작의 시인이었다고 폄하하거나 비아냥거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는 단체장이나 교수이기 전에 시인이었고, 그것을 망각한 적이 없었다.
  시인은 생전에 시로 쓴 자서전 󰡔세월은 자란다󰡕를 펴내면서 자신의 시적 여정을 좌절의 시대, 방황의 시대, 철학의 시대, 귀향의 시대로 구분지은 바 있다. 이 글의 필자는 이 가운데 ‘귀향의 시대’의 시세계를 탐색해볼까 한다. 제 35시집인 󰡔찾아가야 할 길󰡕이 나온 것은 1991년 3월 15일이었고 생애 마지막 시집인 󰡔남은 세월의 이삭󰡕이 나온 것은 2002년 5월 10일이었다. 2003년 3월 8일에 타계했으므로, 생애 마지막 1년 전에도 시집을 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고시집 󰡔넘을 수 없는 세월󰡕은 2주기 때인 2005년 3월 7일에 간행되었다. 시인의 생애 마지막 10년의 족적을 더듬어볼 참인데 이 기간에 낸 시집이 총 19권, 즉 1년에 거의 2권씩 발간하는 왕성한 필력을 보여주었다. 조로현상이 일반적인 한국의 문단 풍토에서 조병화는 아주 예외적으로, 놀라운 노익장을 보여준 시인이다.

  2. 제 35시집에서 그린 어머니

  제 35시집을 발간한 1991년은 시인의 나이가 만 70세가 된 때였다. 그 전에도 시 쓰기를 게을리 한 적이 없었지만 이 시점부터 더욱더 왕성하게 시작에 몰두한다. 특히 제 35시집에서는 서문과 후기를 다 쓰는데, 후기를 아주 길게 쓴다. ‘시에 대한 나의 단상’이라는 제목을 붙여 쓴 후기에서 시인은 본인의 시론을 14개로 정리한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3. 시(작품)는 정확한 기억력과 투철한 상상력으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이미지의 즐거움이다. 새로운 세계와의 해후의 희열이다. (1987. 2. 21)

  이런 식으로 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죽 펼치다가 12번에 이르러서는

  12. 좋은 시를 쓰려면

     1) 깊고, 넓고, 선명하고, 투철한 관찰
     2) 그것에서 떠오르는 시적 이미지
     3) 뜻(자기대로의 생각)
     4) 지속적인 기억력
     5) 서로의 투명한 조화, 통일, 리듬
     6) 감각적인 언어, 정확한. (1990. 6. 13)

이라고 쓴다. 이것은 자기 나름의 시론을 정립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본인의 각오 내지는 결심한 바를 쓴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 앞으로 더욱더 좋은 시를 쓰겠다는 자신과의 다짐을 이렇게 정리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시집부터 유독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아, 어머님
  이 세상 모든 거
  내 육체만 해도 어머님, 당신에게서 빌린 것이고
  내 것이라곤 하나도 없고
  그저 모든 거 빌려 쓰고 있는 것뿐이오나
  제 이 사랑만은, 그렇게는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옵니다
  
  이제 머지않아
  제 이 육체도 돌려드리겠지만요.
                                     ―「사랑」 전문
  
  이 시는 시인이 쓴 수많은 ‘어머니 시편’ 중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나이 일흔이 되고 보니 이제 내가 어머니 곁으로 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써본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으로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이지 내가 잘나서 이 모든 것을 이룬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시인의 어머니 진종 여사는 1962년 6월에 돌아가셨다. 조병화는 5남 2녀 중 막내였다. 아버지 조두원은 조병화가 일곱 살 때 돌아가셨으므로 어머니의 고생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집이 꽤 넉넉하긴 했지만 7남매를 홀몸으로 키운 것이니, 억척스러운 어머니야말로 이 집의 기둥이었다.
  진 여사는 고향 안성을 일찍 떠나 막내를 용인의 송전공립보통학교에 입학시켰지만 ‘사람의 새끼는 서울로 보내고 마소 새끼는 시골로 보내라’는 속담을 믿던 터라 막내가 2학년 올라가면서 서울의 미동공립보통학교로 전학시켜 결국 경성사범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한다. 조병화가 일본의 동경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도 진 여사의 맹모삼천지교 실천 덕분이었다. 조병화는 경희대학교 교수가 되자 어머니를 학교로 모셔와 대학구내 곳곳을 안내해 드릴 만큼 어머니를 각별히 섬겼고 효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평생 어머니의 훈육을 잊지 않았고, 돌아가신 이후에도 많이 그리워했다.

  산사는 어디나
  어머님의 집

  나는 그곳 가까이에서, 지금
  어머님의 부르심을 기다리고 있다.  
                                     ―「山寺」 전문

  나이 칠십이 되어도 이 슬픔 가시지 않아
  의자에 앉아 물끄러미
  원고지, 연필, 칼, 가위, 붓, 풀……
  되는 대로 만져보면
  긴 세월, 나의 어제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부지런히
  아프게 쓸쓸한 시를 살아왔을까
  
  어머님이 주신 대로 부지런히 살아왔어도
  나이 칠십이 되었어도.
                                     ―「어느 생애」 전문

  어머님, 저는 인생이라는 것도 모르고
  한평생 이별만을 살아오다가, 지금 이렇게
  칠십이 넘어서 어머님 곁에 가까이
  초라한 모습으로 와 있습니다
                                    ―「무료한 시간을」 부분

  3편 시 모두 어머니를 생각하며 썼고 자신의 나이를 뚜렷이 인식하고 썼다. 내 나이도 이제 칠십이니 어머니 곁으로 갈 날도 많이 남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우주 어디쯤에 계실 어머님을 찾아서/ 비상을 할 것이려니”(「마지막 비밀」), “나의 생명은 사랑을 품으시다 돌아가신/ 어머님의 아프시던 입김이었습니다”(「나의 내력」), “가만히 있자 하니 하늘이 뒤집히는/ 이 슬픔/ 이, 텅 비어가는 것 같은 적막// 이 슬픔, 이 아픔까지 알고 오라는/ 어머님의 뜻이었던가”(「배신」) 같은 시를 쓰게 되는 것이다. 표제시 또한 마찬가지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아울러 본인의 나이에 대한 인식이 짙게 드리워 있다.

  무수한, 가을밤의 별들을 쳐다보고 있노라니
  문득, 어머님 생각
  어머님도 저 별밭 어디쯤에 계실 텐데
  주소도, 안내원도 없이
  어떻게 그곳으로 나는 갈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찾아가야 할 길ㆍ1」 부분

  어디메쯤, 혹시나 어머님이 마중이나
  나와 계실는지, 하는 부질없는 생각,
  남은 노자를 만져본다
                                     ―「찾아가야 할 길ㆍ2」 부분

  나이 일흔이 되고 보니 내가 찾아가야 할 길은 다른 길이 아니라 어머니의 길이었다. 어머니가 걸어왔던 길, 어머니를 찾아가야 할 길이었다. 시인은 이제 어머니를 자신의 종교로 생각하기에 이른다. 아래 시는 어머니교 신도의 기도문이라고 할까.

  지금 내가 어머님을 찾아서 가는 길은
  길이 없는 길
  돌밭과 자갈밭, 붉은 황토밭
  그저 불모로 이어지는 황무지
  그곳에 스스로 길을 내며
  혼자서 찾아간다

  먼 곳에 반짝이고 있는 영롱한 별밭
  그곳 별밭 어드메쯤에 어머님이 계실 듯한
  생각으로 나의 믿음을 이어가는
  허름한 스스로의 내 신앙
                                     ―「어머님을 종교로」 앞 2연

  이와 같이 나이 일흔을 맞아 펴낸 제 35시집에서 조병화는 자신의 근원이었던 어머니를 찾아가는 여정에 올랐다. 그렇다면 1973년에 펴낸 제 21시집 󰡔어머니󰡕와 이 시집은 무엇이 다른가. 이전에 낸 시집은 어머니에 대한 추억담을 담은 전기의 성격이 강한 데 비해 이 시집은 어머니가 가 계신 곳, 즉 저승에 갈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죽음의식이 깔린 어머니 인식이라는 점이 다르다. 시집 󰡔어머니󰡕에 나오는 「때때로 생각나는 당신 말씀」 「얘, 너 언제」 「어머님 급하시다기에」 「당신이 평소」 등은 추억담이라고 할 수 있고 「一九六二年 六月 三日」 「당신이 지금 누워 계시옵는」 「때로 꿈에」 「당신이 당신의 육체를 버리고」 「그저 눈물이」 등은 어머니를 여의고 슬픔에 잠겨서 쓴 애도의 시편이다.
  이제 다음 시집부터는 특성만을 요약ㆍ정리하면서 훑어볼까 한다.

  3. 고독한 자의 영혼 고백

  제 36시집 󰡔낙타의 울음소리󰡕는 제 1부가 ‘영혼을 씻어 내리는 물결’ 72편인데 주로 영혼의 고백이고 제 2부 ‘낙타의 울음소리’는 중국 여행을 하고 와서 쓴 여행시로서 19편이다. 총 91편이 수록된 시집인데 제 35시집을 내고 10개월 후에 낸 것이므로 이 무렵 조병화 시인이 얼마나 치열하게 시작에 몰두하고 있었는지, 발간 일자가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내 마음 보이지 않는
  나만이 숨을 수 있는 외로운 영혼의 섬이 하나 있어
  쓸쓸하고 쓸쓸한 땐 슬며시 그곳으로 숨어 버립니다.
                                     ―「외로운 영혼의 섬」 마지막 연

  내 마음은 숨어서 내리는 봄비
  칠십이 되어도 개는 날이 없구나
                                     ―「내 마음은」 제 1연

  내 영혼은
  숨어서 우는 노래로 가득합니다

  내 시는
  숨어서 우는 노래로 젖어 있습니다
                                     ―「숨어서 우는 노래」 부분
  
  나이 일흔이면 이제 대학에 명예교수로 나가기도 그렇고, 문학단체에서도 실제적인 일은 그만두고 뒷전에 나앉을 시점이다. 과연 자신이 몇 해를 더 살 것이며, 몇 편의 시를 더 쓸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존재론적인 사색을 했을 테고 그것을 시로 썼을 것이다. 앞으로 살아본들 10년 정도이겠거니 생각하면 무척 쓸쓸해질 법하다. 더군다나 50~60대 때 열정적으로 살았다면 더욱더 회의에 사로잡힐 것이다. 72편 시 가운데에는 이렇게 고독감을 토로하는 시가 여러 편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기도 하는데, 그것은 꿈속에서이다.

  돌진하다 보니 공은 바람이 되다가, 구름이 되다가,
  나를 하늘로 하늘로 끌고 올라가다간
  땅으로 내려뜨려 버렸습니다.

  순간, 나는 잠에서 떨어져서
  멍청히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밤 세 시, 실로 황홀과 무서움이
  혼전하던 두 시간
  침대가 축축이 젖어 있었습니다.
                                     ―「럭비를 하던 꿈」 끝부분

  럭비를 하던 젊은 날의 자신을 꿈속에서 보았던 모양이다. 시인은 경성사범학교 시절, 육상부와 럭비부에 들어갔는데 특히 럭비에서 출중한 실력을 보여 조선 럭비 대표선수로 뽑혀 일본에 원정을 가기도 했다. 1943년 4월에 동경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해서도 럭비부에 들어가서 뛰었다. 1946년부터 1963년까지 대한럭비축구협회의 이사를 지냈으니 그의 럭비 사랑은 각별하였다. 그래서 이런 꿈까지 꾸었던 것이다. 이즈음에 여러 가지 공식 직함을 내려놓고 시인은 고향인 안성에 가서 옥호를 ‘片雲齋’라고 붙이고는 거의 칩거하다시피 한다. 외로운 심사를 어떻게 할 수 없어 펜을 들어 시를 쓰곤 하였다.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하루, 이틀, 사흘, 걸어보던 먼 추억이
  지금은 큰 바다가 되어
  
  그 추억으로 넘치는 바다 한가운데서
  나는 지금 헤아릴 수 없이 약해진 몸으로
  기진맥진 허덕이고 있습니다
  좌절과 충돌, 욕설의 암초
  오욕의 파도를 헤치고
  굴욕의 물결
  유혹의 등대를 멀리
  한없이 항해해 온 이 절인고독
                                     ―「추억을 추억하며」 부분

  시의 제목을 보면 추억담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기진맥진, 좌절, 암초, 오욕, 굴욕, 절인고독(絶人孤獨) 등 어두운 시어가 속출하고 있다. 과거의 행복했던 일에 대한 추억, 따뜻했던 경험에 대한 기억은 시에 잘 나오지 않는다. 돌이켜보니 회한뿐이고 지금 내 신세는 절해고도의 유배객 같다.  
  중국 여행시는 “일본 후쿠오카에서 상해로 다시, 상해에서 장춘, 연길, 두만강, 용정, 백두산,/ 심양, 북경, 서안, 난주, 둔황, 난주, 상해,/ 소주 다시 상해로, 그리고 오늘 도쿄로 떠난다”(「다시 上海에서」)란 여정에 잘 나타나 있듯이 여행지에서의 감회를 읊조린 것이 대부분이다. 19편 가운데 시집의 제목이 된 시가 있다.

  이처럼 슬프고도 처량한 동물을 나는 본 일이 없다
  천대를 받으며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하는 불쌍한 동물을 나는 본 일이 없다

  나는 낙타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한다
  하물며 어떻게 이 슬프고도 가련한 동물을 타고
  그 사막을 유람하리
                                     ―「낙타의 울음소리」 부분

  둔황을 여행할 때 본 낙타와 그의 애끓는 울음소리에 이렇게 마음 아파한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 자신을 이 동물에 감정이입한 것은 아닐까. “이 아슬아슬한 인생의 길/ 살며/ 얼마나 많았던 그 캄캄한 고비였던가”(「산다는 거」) 하면서 회한에 젖어 있는 시인으로서는 낙타의 순종이 예사롭지 않았던 것이다.

  4. 번호만 있는 연작시집

  제 37시집 󰡔타향에 핀 작은 들꽃󰡕은 제목이 하나도 없고 58편의 연작시를 모은 시집으로 시인의 생명의식, 우주론, 종교관 등을 나타낸 것이다. 편편의 시가 “사랑스러운 나의 들꽃아,” 하면서 시작된다. 마지막 시 1편만 보자.

  이 은혜로운 인연을 오로지
  부처님께 감사할 뿐이란다
  어디에 계시는지는 모르나
  너와의 인연을 부처님께 감사할 뿐이란다
  
  이 이승의 세계엔 불모의 사막도 많은데
  넓고 푸른 이 대지에 너와 같이
  아름답고 고운 작은 들꽃을 주시니
  얼마나 고마우신 부처님의 은총이냐

  실로 부처님의 은총이 너에게 가득하구나
  푸른 이 대지에 가득하구나
  온 우주에 가득하구나
                                     ―「58.」 부분

시집 한 권이 세상의 뭇 생명체에 대한 예찬이며 찬불가이다. 또한 시인의 우주적 상상력의 발현을 집대성한 것이다. 타고르의 󰡔기탄잘리󰡕를 연상케 하는 이 시집이 외국어로 번역이 잘 되었다면 전 세계 독자에게 동양정신의 신비로움을 마음껏 전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철학적 내용의 깊이와 종교적 사색의 깊이가 느껴지는 이런 시에는 이전 시와는 다른 신비로움이 서려 있다.  

  5. 시간의식의 산물

  앞서 본 시집 이후에 낸 6권의 시집은 시인의 시간의식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에 대한 논의가 6권 시집에서 계속해서 전개된다. 어디서, 언제 발간한 시집인지 확인을 해본다.

  제 38시집 󰡔다는 갈 수 없는 歲月󰡕, 혜화당, 1992. 11. 10.
  제 39시집 󰡔잠 잃은 밤에󰡕, 동문선, 1993. 9. 5.
  제 40시집 󰡔개구리의 명상󰡕, 동문선, 1994. 7. 20.
  제 41시집 󰡔내일로 가는 밤길에서󰡕, 문학수첩, 1994. 12. 10.
  제 42시집 󰡔시간의 속도󰡕, 웅진출판, 1995. 10. 31.
  제 43시집 󰡔서로 따로 따로󰡕, 예니, 1996. 5. 1.

  각 시집의 대표시나 표제시만 살펴보고자 한다. 3년 반 동안 6권의 시집을 냈으니, 시인이 얼마나 말년에 대한 자각을 강하게 하고 있었는지 짐작하고도 남으며, 경이롭기까지 한 일이다.

  걸어서 다는 갈 수 없는 곳에
  바다가 있었습니다

  날개로 다는 날 수 없는 곳에
  하늘이 있었습니다

  꿈으로 다는 갈 수 없는 곳에
  세월이 있었습니다

  아, 나의 세월로 다는 갈 수 없는 곳에
  내일이 있었습니다
                                     ―「내일」 전문

  이 시에서 내일은 몇 시간 뒤의 다음날이 아니라 먼 미래를 가리킨다. 미래의 일을 우리가 예측은 할 수 있지만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리고 미래는 죽음의 세계로 이어진다. 다른 시에서 시인은 “수많은 이별이 오락가락하는/ 세월의 길목에서/ 내일은 항상 캄캄하옵니다.”(「내일 앞에서」)라고 말한다. 내일이 항상 캄캄하다는 것은 인간이 미래를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에 입각해 있다. 지나간 세월에 대한 기억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신이 아닌 이상 그저 열심히 오늘(현재)을 살 수밖에 없다는 시간관의 일면을 이 시집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제 39시집에서 제일 빈번히 나오는 시어는 ‘고독’과 ‘세월’이다. ‘외로운’이라는 수식어와 ‘외로움’을 포함하여 ‘고독’은 총 60편의 시 가운데 16편의 시에 나오고 ‘세월’이라는 시어가 1회 이상 나오는 시는 총 12편에 달한다. 즉, 시인은 지나간 시절을 회상하면서 혼자 남았다는 고적감에 사로잡히는 일이 무척 잦아졌음을 알 수 있다.
  󰡔개구리의 명상󰡕 63편에서는 어머니를 계속 찾으면서(총 21편의 시에 ‘어머니’가 나온다) 본인의 죽음을 예감한다. 어머니 곁으로 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시에서 줄기차게 이야기한다.

  그 사람은 가고, 그 사람도 가고
  이제 머지않아 나도 갈 나이
  혼자 남아 있다는 건, 고통스러운 벌이옵니다

  어머님, 당신도 그러하셨겠지요만.
                                     ―「어느 아침」 끝부분

  견디는 것이다
  어머님이 나에게 주신 마지막 고통까지를
  하나도 빠짐없이 고통하면서
  “어머님, 이젠 저의 고통 다했는지요”
  슬며시 여쭈어 보면서.
                                    ―「죽음은 차례로」 끝부분

  어머니를 시어로 등장시킨 시가 모두 죽음에 대한 명상에 다다르지는 않지만 거의 전부 어머니는 사랑을 실천하신 분이라기보다는 저승에 가 계신 분으로 그려져 있다. 시인에게 죽음이란 고통을 안겨준 육신이 사라짐과 동시에 영혼이 어머니 곁으로 간다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이런 시편은 확인시켜 준다.
  제 41시집 󰡔내일로 가는 밤길󰡕에는 가을을 노래한 시가 유독 많다. 「초가을」 「가을비」 「가을 여행」 「가을 편지」 「가을」 「가랑잎」 「추석」 「가을 하늘 밑에서」 「가을 소식」 등 9편에 이른다. 죽음에 대한 명상의 결과물은 가을 시편 외에도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나의 숙명」 「돌아가는 길」 「마지막 편지」 「시간의 속도」 「때는 어김없이」 「생존에 관한 잠언」 「산다는 것」 「남은 약속이 있는 곳으로」 「지금에 와서」 「당신 없이는」 등 10편을 상회한다. 이 시집을 낸 것이 1994년 12월 10일, 지상에 존재한 지 73년 7개월이 되었을 때였다. 아직 죽음에 대한 사색에 빠지기에는 좀 이른 때였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왜 이토록 깊이 죽음의식에 사로잡혔던 것일까. 시인은 종종 담배 파이프를 청소하는 장면을 시로 썼는데, 평생 애연가였던 자신이 장수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감했던 것 같다.

  어찌나 댓진이 까맣게 끼어 있었던지
  하얀 클리너가 새까맣게 되어 나왔습니다
                                     ―「파이프를 청소하고 있노라니」 부분(제 39시집)

  외로움도 몸에 해롭다는데
  고독도 죽음으로 이르는 병이라는데
  몸에 해롭다는 혼자만 남았다

  파이프만 남았다
  구멍이 뻥 뚫린 까만 가슴만 남았다.
                                     ―「파이프」 부분(제 39시집)

  강하게 빨아들이면 강하게
  약하게 빨아들이면 약하게
  아, 한없이 정직한 담배연기
                                    ―「파이프를 피우며」 부분(제 40시집)
  
  시인 조병화를 찍은 수많은 사진에 등장하는 파이프 담배이고 보니 자신도 이러한 습벽이 죽음을 재촉할 것을 예감하고 있었는데 실제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으니 천수를 누렸다고 할 수 있다. 󰡔내일로 가는 밤길에서󰡕와 󰡔시간의 속도󰡕 󰡔서로 따로 따로󰡕는 죽음의식이 더욱 깊게 진행되어 체념에 가까운 우울한 정서가 지배하고 있다. 시집의 제목부터 주제를 잘 말해주고 있다. 각 시집의 제일 앞머리에 놓인 시만 봐도 무슨 상념에 잠겨 있는지 알 수 있다.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세상 어지럽게 많은 말들을 뿌렸습니다.”
  다 잊어 주십시오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다 잊어 주십시오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당신의 사랑의 은혜 무량했습니다”
  보답 못한 거 다 잊어 주십시오

  아,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전문(제 41시집)

  1994년 10월 5일에 썼다고 표시되어 있는 이 시는 본인의 죽음을 예감하고 쓴 듯, 비장하기까지 하다. 이 시를 쓰고 9년 뒤에 시인은 세상을 뜨게 되지만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의식이 이 무렵 시인의 마음을 가장 강하게 사로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무리 금력이 강하다 한들,
  아무리 권력이 강하다 한들,
  아무리 신의 힘이 강하다 한들,
  아무리 천하장사의 힘이 강하다 한들,
  어찌, 이 낙화를 막을 수 있으리

  아, 그와도 같이
  어찌 이 세월의 속도를
  당기고, 멈추고, 늦추고, 할 수가 있으리.
                                    ―「세월의 속도」 전문(제 42시집)

  옛 사람들이 ‘세월의 속도’를 흔히 유수 같다느니 쏜 화살 같다느니 표현했는데 시인은 그것을 막을 수도 없고 조절할 수도 없다고 한다. 시간이 째깍째깍 가고 있기 때문에 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집의 마지막 시 제목이 ‘1994년, 살아남아서’인 것도 인상적이다. 제 43시집의 제일 앞에 놓인 시는 인생론이다.

  나는 당신을 만난 것을
  후회합니다
  그리고 당신을 사랑한 것을
  후회합니다
  그리고 당신과 헤어진 것을
  후회합니다
  
  그리고
  당신과 만난 것을 고마운 인연으로,
  당신과 헤어져서 잊지 못하는 것을 사랑으로,
  이렇게 오래 긴 세월을
  하늘의 은총으로 살고 있습니다.

  인생이 그런 것처럼.
                                    ―「나는 긴 인생을」 전문(제 43시집)

  제 1연에서 시인은 인연을 맺는 것에 대해 후회를 하는 듯한 발언을 하지만 제 2연에 가서는 태도를 바꿔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하늘의 은총이었다고 말한다. 75년을 산 시인은 ‘긴 인생’을 회고해보니 다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살아왔던 것이고, 그 인연에 대해 고마워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후회한다는 말은 미안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다.

  6. 시인의 귀거래사

  이제부터 다뤄야 할 시집이 9권이고 유고시집을 넣는다면 10권이다. 10권 시집의 특성을 일일이 논할 수는 없으므로 왜 자신의 시적 행로의 마지막 시기를 ‘귀향의 시대’라고 이름 붙였는지, 그에 관련된 시만 추려서 논의를 해볼까 한다. 그 전에 제 44시집의 이름을 ‘아내의 방’이라고 붙였는데 사실 이 시집에서 아내를 등장시킨 시는 단 2편에 지나지 않는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의 표시로 시집의 제목을 그렇게 붙인 것이다.

  지금, 아내의 방은 텅 비어 있습니다
  병원으로 떠난 지 벌써 며칠
  집으로 돌아올 기별은 멀고
  매일 밤 들여다보는 아내의 방은
  어둠만 자욱히 깔리고
  텅 비어 고요하기만 합니다

  암은, 저세상으로 떠나는
  순번이라는데
  아내도 그 순번을 지나고
  제 집, 제 방을 떠나서
  남의 집, 남의 방,
  멀리 낯설은 곳에 누워 있습니다
                                    ―「아내의 방」 전반부

  세월이 겨울처럼 사정없이
  우리를 휩쓸어 가려니
  아, 우리는 어디서 또 만나리

  여보,
  안아줘요, 붙들어줘요, 힘을 주세요

  이제 당신만이 내 힘이옵니다
  
  우린 서로 너무 멀었어요.
                                    ―「겨울, 1996」 후반부

  시인의 아내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던 것인데, 아내를 잃은 뒤의 허전함을 이렇게 시로 썼다. 뒤의 시는 특히, 두 사람 사이에 거리감이 있었고, 그렇기에 더더욱 아내에 대한 갈망이 크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제 45시집부터는 고향을 노래한 시가 부쩍 늘어난다. 시집마다 고향 노래가 몇 편씩 되는데, 사실 그는 고향을 보통학교에 입학하면서 떠났으므로 추억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일흔이 되어 돌아온 고향이기에 이 시집은 주로 고향에 정착한 이후의 심정을 다룬 시편이라고 볼 수 있다.

  떠나도, 떠나도
  돌아오는 곳은
  장재봉, 내 고향 난실리

  세상 넓고, 먼 곳
  구름처럼, 바람처럼, 더 갈 곳 없이
  떠돌아만 보아도
  어머니 품안 같은 곳은 이곳뿐.
                                    ―「내 고향, 長才峯 난실리」 전반부(제 45시집)

  그야말로 시인의 귀거래사다. “조상들이 대대로 살다 돌아가신 곳”에 와서 여생을 보내게 된 것을 무척 다행스러워하고 있다. 이 시집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에는 부제 ‘片雲齋에서’가 총 18편인데 제목이 「담쟁이덩굴」 「山莊에 부는 바람」 「따다 남은 열매」 「이른 봄」 등은 풍경화이고 「닭」 「뜸부기」 「참새」 「메추리」 「멧새」 「꿩」 「굴뚝새」 「오리」 「올빼미」 「뻐꾸기」 「까치」 「까마귀」 「꾀꼬리」 「콩새」 「후투티」 「박새」 「제비」 「산비둘기」 「종달새」 등은 서재 겸 거주지인 편운재를 찾아오는 새들에 대한 단상을 시로 쓴 것이다.
  제 46시집 󰡔황혼의 노래󰡕는 제목 없이 일련번호를 144개 붙인 연작시로서 노년의 일기라고 할 수 있다. 제 47시집에 이르면 고향 노래가 늘어난다.

  고향은
  스스로가 태어난 곳
  스스로가 죽어서 돌아가는 곳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와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는 아득한 안개
  이것이 인생인 것을
                                    ―「고향」 전반부(제 47집)

  고향의 하늘은 넓다, 깊다
  편안하다, 자유롭다, 아늑하다
  한없이 너그럽다

  사람은 나이가 차면
  고향의 하늘이 되어간다고 했던가
                                    ―「고향의 하늘」 부분(제 47집)

  전자는 고향을 수구초심의 심정으로 생각하게 되었음을 알게 하는 시다. 후자는 시인이 고향을 심신을 안정시키는 ‘자연의 품’으로 생각하게 되었음을 알게 하는 시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을 난실리는 경기도 안성에서도 시내 쪽이 아니라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2권의 시집을 내고 나서 마침내 제 50시집 󰡔고요한 귀향󰡕에 이르게 된다. 우리 나이로 여든에 낸 시집이다.

  이곳까지 오는 길 험했으나
  고향에 접어드니 마냥 고요하여라
                                    ―「고요한 귀향」 부분(제 50집)

  고향에 와서 무슨 말이 있으리
  
  먼 조상들이, 그리고 아버지 어머님이
  희로애락 같이 사시며 우릴 키우신 곳

  자연과 세월이 바뀐들
  흙이야 바뀌리
  
  아, 이 흙이 나의 살, 나의 피, 나의 뼈,
  나의 얼이로다.
                                      ―「난실리 내 고향」 전문(제 50집)

  이제 고향은 내가 죽어 묻힐 곳이라는 의미로 여겨진다. 그래서 이 시기의 고향 시편은 다 수구초심의 심정으로 쓴 귀거래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기 시집의 중요한 특징은 죽음에 대한 집요한 사색이다. 「난실리 내 고향」이 그러하듯이 시인의 죽음의식은 거의 모든 시집의 모든 시편을 관통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애달파하거나 애석해하지 않고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일 자세를 취한다.

  전화를 걸어도 벨만 울리고
  번번이 받지 않는 벗들
  이 주소 버리고
  어디로들 갔을까

  (……)

  언젠가는 나도 이러하려니
  벗들을 탓한들 무엇하리
  이것이 인생인 것을
  인생은 이러한 것을.
                                      ―「인생은 이러한 것을」 부분(제 52집)
  
  생애 마지막 시집에서 이런 회한과 체념을 동시에 표현하더니 마침내 83세를 일기로 조병화는 숨을 거둔다. 유고시집 󰡔남을 수 없는 세월󰡕에는 46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의미심장한 시가 있다.

  늙는다는 것은 버리며 사는 것이려니
  늙는다는 것은 나누며 사는 것이려니
  늙는다는 것은 물러나며 사는 것이려니
  늙는다는 것은 물려주며 사는 것이려니

  아, 늙는다는 것은 포기하며 사는 것이려니
  초월하며 사는 것이려니
  비어주며 사는 것이려니

  매일이 그러하길
  매일매일이 그러하길
  남은 날 남은 날까지 그러하길
  생각하며 다짐하여 사는 요즘
  
  아, 늙는다는 것은
  혼자 남아가길 사는 것이려니.
                                      ―「늙는다는 것은」 전문(제 53집)

  이 시는 생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하면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현명한가를 생각하고선 스스로 다짐하는 내용이다. 늙는다는 것은 결국 혼자가 되는 것이고 그래서 “혼자 남아가길 사는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다. 「비석」이란 시는 “비석이 쭈르르 비를 맞고 있다/ 순수 고독, 순수 허무”가 전문이다. 자신의 비석에 이 네 글자가 새겨지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이렇게 시로 자신의 비문까지 쓰고 그는 2003년 3월 8일에 경희의료원에서 영면하였다. 종교적 성향이 그리 강하지는 않았지만 불교에 가까웠던 그는 기독교나 천주교의 장례를 따르지 않았다. 그의 육신은 고향 안성의 편운동산 안에 있는 언덕에 묻혔다.

  7. 소결

  이 글은 조병화 시집 53권 중 그의 마지막 생애 10년 간 발간된 시집을 중심으로 시적 지향과 변모를 살펴보았다. 다작 시인의 면모 때문에 평가 절하되기도 했던 그의 시 생애를 놓고 볼 때, 문단 생활 54년 간 시집 53권을 상재했다는 사실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성과다. 그만큼 조병화는 등단 이후 시에 살다 시에 죽은 시인이다. 이러한 칭호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 시어 운용이 다채롭고 서정적이었으며, 철학적이고 직관적이었다. 이 글에서는, 조병화가 자신의 시적 여정을 네 단계로 구분한 것 중 마지막 단계인 ‘귀향의 시대’에 주목하였고, 만 나이 70세에 낸 제35시집 󰡔찾아가야 할 길󰡕부터 유고시집 󰡔넘을 수 없는 세월󰡕까지 10년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조병화 시인의 말년 기록인 ‘귀향의 시대’에 두드러지는 것은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 나아가 그리움을 넘어서는 종교 차원의 모성이다. 조병화에게 모성은, 유년에 아버지를 잃은 뒤의 사랑과 순명,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한 해가 멀다 하고 시집을 묶어낸 말년에 조병화는 절해고도에 처한 듯한 고독감을 불교적 사색으로 채워 나갔다. 나아가 시인은 자신이 한정된 시간 속의 존재라는 것을 깊이 자각한 시편들을 여러 편 쓰기도 했다. 말년에 이르러 강한 자의식으로 더더욱 열정적으로 시인의 삶을 살았으며, 반성과 성찰의 언어로 주변 사람들을 회고하고, 귀향 후에는 고독 속에서 초월자의 자의식을 갖게 되었다. 홀로 죽음과 대면하는 절대고독의 시간에 조병화는 시 쓰기를 필생의 작업으로 승화했으며, 그것이 필멸의 예감과 함께 이루어진 작업이어서 깊은 의미를 갖는다 하겠다.        

  


이승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등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문학평론집 󰡔한국 시문학의 빈터를 찾아서 2󰡕 󰡔욕망의 이데아󰡕 등
편운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수상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제목: "조병화의 삶과 시 -귀향의 시대- " 강연 (2019.12.13)


사진가: 관리자

등록일: 2020-01-0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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